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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2016년 7월 16일 오후 7시
장소: 아트 스페이스 풀
참여자: 김미정(이하 김), 정무진(이하 무), 정효영(이하 효), 정영돈(이하 돈)

김: 영상에 등장하는 장소가 특이한데, 같은 장소인 것으로 보인다. 촬영 장소는 주로 어디인가?

돈: 집 위의 옥탑이다. 주로 거기서 촬영한다.

김: 정말 많이 듣는 질문이겠지만, ‘무진형제’ 이름의 의미가 궁금하다.

무: 내 이름이기도 하고 첫째인 나를 대표로 해서 같이 하자고 했었다. 참고로 무진형제의 영문인 Moo는 각자 이름의 이니셜을 합친 것이기도 하다. 일단 가장 중요한 하나의 의미만 꼽자면 세상이 규정하는 진실이나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영상으로 싸워보자는데 있다.

김: POOLAP 인터뷰 당시 여러 가지 피드백이 있었는데 어땠는가?

무: 양효실 선생님이 “노동자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그걸 담아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얼만큼 그것을 받아들이고 볼 수 있는가, 결국에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리얼리즘이 아닌가”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이는 우리도 고민하던 부분이었다.

효: 그리고 영상을 만들어나가는 표현방식에서 시작해서 받아들이는 것까지 그 간극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말씀하셨는데 정말 우리가 고민하던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주셨다.

무: 우리는 단순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문제 등을 끄집어 내서 영상으로 찍게 되었는데 그걸 ‘리얼리즘’이라고 말씀해주셨을 때 왜 그 부분을 고려하지 못했는지 아쉬웠다. 좀 더 범위를 넓혀서 우리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런 부분을 많이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 각각 전공이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 같이 작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2-3년 전에는 콜렉티브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협업하는 작가들이 많이 등장했다. 당시 어떤 그룹에게 왜 이렇게 같이 작업해야 되는지 물어봤었다. 그 중 한 명이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즉 혼자 하면 자금이든 시간이든 부족한 점이 많지만 같이 하면 상쇄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이 아닌 가족끼리 같이 작업하는 것도 만만찮게 어려울 것 같다. 어떻게 해서 형제가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또한 각자 작업을 하면서 사용하는 매체가 다른데 최종 결과물이 영상인 이유는 무엇인가?

효: 처음 함께 작업했던 작품은 <기다리지 않아도 너는 온다>였다. 이 작품은 내가 대학 때 과제로 냈던 영상이었는데, 형제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대충 상황을 설명한 후 언니가 카메라를 잡고 내가 배우로, 남동생이 엑스트라로 나왔는데 새벽에 정말 재미있게 촬영을 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소통이 잘 되었다. 그렇게 해보고 그냥 각자 삶을 살다가 다시 같이 작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서로 가진 것들이 영상으로 만들어지기에 너무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좋은 시너지가 나올 것 같았다. 늘 셋 다 영상작업에 목말라 있었다.

돈: 영상 작업을 하자고 했을 때부터 영상을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셋 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공포영화에서 예술영화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보았고, 그런 경험들이 영상 작업으로 이어진 것 같다. 영상이나 영화에 있어서 셋이 함께 공유한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영상만큼은 공동 작업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효: 이제는 룰을 정한다. 회의할 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 “됐어, 그만둬” 그런 것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안 되더라. 가족이라서 바닥을 보여줄 수 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데 바꿔 말하면 바닥을 보여줄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작업을 지속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규칙을 정해서 작업을 진행하는 편이다.

효: 형제이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게 있다. 오랫동안 한 공간에서 지내면서 서로의 감정선이나 한계치 등을 잘 감지하기 때문에 작업할 때도 그런 걸 최대한 고려하는 편이다. 형제이기 때문에 쉬운 것도 있지만 더 많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이제는 이게 몸에 베여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런 이유로 계속 같이 할 수 있는 것 같다.

김: 각자 전공이 다르다. 무진씨는 문학, 효영씨는 조각, 영돈씨는 사진이다. 본인만이 가진 시각언어가 있는데 서로 부딪히지 않나? 서로 상황이나 주제를 이해하는 방식이 매우 다를 텐데 말이다.

모두: 초반에 그것 때문에 많이 싸웠고 지금도 자주 싸운다.

돈: 나와 작은누나는 이미지로 이야기하는데, 큰누나는 언어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라 많이 부딪혔다. 그런 걸 좁혀 나가고자 <더미>(2015), <적막의 시대>(2012) 할 때 드로잉, 글 그리고 사진 등 서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매체를 탐구하고 공유하는 작업을 해보았다. 아직도 서로의 전공분야로 인한 차이 때문에 부딪치는 부분이 있다. 특히 작업을 구상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예전보다 각자의 언어를 더 잘 받아들이고 있는 편이다. 가령 큰누나가 시나리오를 쓰면 작은누나와 나는 큰누나의 글에 대해 적절한 피드백을 주고, 작은누나가 조형작업 할 때 그게 어떻게 영상으로 이어질지 더 세심하게 고민하는 편이다. 생각해보면 그러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영상작업이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서로의 언어가 부딪치는 과정에서 생기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분명 있다. <풍경>(2016) 작업의 사운드 작업도 사실 셋에겐 매우 생소한 분야이다. 그럼에도 각자가 이해한 사운드의 개념이나 감각 등을 총 동원해 이리저리 맞춰보고 조율해 가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 동생들이 “어떻게 그것을 이미지화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면, 나는 너무 언어화만 생각하고 있던 것 같다. 작업을 구상할 때 효영이가 그림으로, 영돈이가 사진으로 보여줄 때도 있다. 가끔은 그걸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면 정말 힘들 때가 있다. 얼마 전까지는 그게 언어와 이미지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효영이와 영돈이의 작업을 들여다 보고 그걸 토대로 뭔가를 구상해 보면 내가 수많은 언어의 길 중 한 길로만 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더미>(2015) 작업을 했을 때 특히 그랬다. 동생들이 요구한 글쓰기는 지금까지 내가 해본 적 없는 방식이었고, 그래서 갈등도 상당했던 것 같다. 그런데 원하는 대로 맞추다 보니 어쨌든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글쓰기가 가능하더라. 그때 언어와 이미지의 간극을 좁힐 게 아니라 어떻게 언어라는 형식을 좀 더 다양화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어가 펼쳐지는 곳이 백지 위만이 아니라 정말 다양한 공간과 매체일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이렇게 근본적인 문제로 부딪치고 싸우다 보니 촬영은 사실 3-4일 정도 밖에 안 걸리는데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데만 몇 개월 걸린다.

김: ‘무진형제’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활동이 개별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가?

효: 정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 같은 경우 무진형제 작업이 더 피부로 와 닿는다. 주제가 더 흥미롭기도 하다. 무진형제 작업을 하면서 내 방향성을 찾는 것 같다. 무진형제의 작업을 통해 작업에 대한 시야가 바뀌기 시작했다. 좀 더 넓어졌다고 할까. 무진형제의 작업을 하다 보면 전에는 전혀 하지도 않았고 엄두조차 못 내던 부분, 가령 <풍경>에서 스탑모션과 같은 것들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많이 배웠고, 이게 어느새 개인 작업에 영향을 미쳐 작업도 더욱 확장되는 부분이 있었다. 예전에는 내 시각이나 생각에만 갇혀서 작업했는데, 형제들과 함께 하다 보니 내 안에 여러 시각이 존재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렇게 무진형제를 통해 기존에 조형작업에만 갇혀 있던 걸 넘어서 내 작업에 있어서도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꼭 한 가지 형식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건 언니 무진이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물론 형식적인 부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사실 나는 노동이나 사회 시스템, 역사 등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무진형제 작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주제의식에 백퍼센트 공감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무진형제 작업을 통해 알게 된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온전히 마음을 쏟고 그것들을 어떻게 작업으로 끌어올지에 대해서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그저 미적이고 형식적인 완성도만 좇던 내가 무진형제를 통해 시야가 넓어졌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앞으로 무진형제는 물론 다른 작가 분들과 작업하면서도 이러한 부분에서 많은 변화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무: 나는 늘 글을 위주로 생각하고 쓰려고 했는데 요즘은 카메라가 더 중요해졌다. 신기하게도 글이 아닌 영상으로 떠오를 때가 있다. 물론 나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 문자가 펼쳐질 영역을 좀 더 넓히기 위해 종이 위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는 중이고, 나의 글도 영상을 위주로 쓰여지고 있다. <풍경>에서도 그렇고 언어와 책이 어떻게 영상과 만나서 펼쳐질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좀 더 고민하는 중이다. 이런 작업을 위해 무진형제 내에서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많은 실험을 해볼 생각이다. 이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겠다.

김: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한 달에 몇 번씩 만나서 회의 한다' 같은 규칙이 있나?

무: 일단 우리가 생각한 게 있으면 주기적으로 만나서 공유한다. 서로 공유한 다음에 본 작업이 들어가기 한 3~4개월 전쯤 발전시킨다. 효영이는 만들기 위주, 나는 시나리오, 영돈이는 이미지 작업들을 조사하는 식이다. 이렇게 맞춰보고, 아니다 싶으면 엎고 괜찮으면 발전시킨다.

효: 일단 서로에게 확인을 받는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이렇게 만들 거야 어때” 하고 의견을 구하고, 동의가 떨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각자에게 맡긴다. 내가 세트장을 만들면 영돈이에게 카메라를 맡기는 식이다. 주로 나왔던 내용들은 우리가 겪는 것들에서 많이 나왔던 것 같다.

돈: 회의할 때 이야기는 ‘우리’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겪은 경험, 혹은 「그것이 알고 싶다」, 뉴스 등에서 나온 사회적인 사건들에 대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도 회의 내용의 주를 이룬다. 이를 통해 ‘어떤 가상의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을까’가 시작이 되고, 제일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눈 앞에 주어진 사실에 우리의 감각과 생각이 이미지화된 작업을 또 한 번 입히는 작업이라 시간과 노력을 많이 쏟아 부어야 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회의를 하며 작업을 가다듬는다.

김: 본인들의 경험과 이야기에서 작품이 시작된다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삶, 노동, 인생, 그리고 거기서 오는 무거움이 작업에서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형식이 아닌 본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상으로 찍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 <결구>(2015)는 실제 내 이야기다. 늘 노동현장에 대해 생각하지만, 노동현장 자체보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감각적인, 감정적인 것들과 거기서 오가는 사람들의 말에 더 관심이 가고 중요하게 여긴다. 이걸 동생들에게 이야기했더니 효영이는 터널의 이미지를 생각해냈다. 셋이서 경험한 것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만약에 혼자 작업했다면 다큐멘터리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각자 경험이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콜라주를 하다 보니 가상의 무대가 만들어진다. <결구>의 등장인물은 나 자신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설정한 현장에서 일을 할 법한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에게 가상의 의상을 입혀놓고 촬영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감각적, 이미지적인 충돌들을 구현해보고자 한다.

김: 노동현장 자체를 드러낸다기보다는 그 안에서의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데 더 주력을 두는 거라고 볼 수 있겠다.

무: 그래서 일을 하면서도 계속 생각한다. 사람들이 싸움 나면 구경하면서 ‘저걸 어떻게 영상으로 담아볼까’하고 고민하기도 한다. 물론 실제 그 자체를 성실하게 묘사하는 건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그들이 주고받는 거친 언행, 그 위로 깜빡거리는 수십 개의 형광등, 지게차와 바코드 찍는 소리의 뒤섞임, 한 켠에 쌓여 있는 헌 목장갑 등...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미지와 이야기의 무대가 만들어진다.

김: <결구>까지는 작품에 나레이션이 없었는데 <더미>에서는 나레이션이 등장한다. 스토리상 그렇게 된 것인가? 왜 나레이션이라는 설명의 장치가 들어가게 된 것인지?

돈: <더미>는 사실 ‘이야기’가 먼저였다. <더미> 촬영장은 원래 폐가였다. 그런데 촬영하러 갔는데 집이 무너져있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다 바꿨다. 그 다음에 시나리오가 바뀌면서 ‘이 전에 있었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는데 이게 이미지만으로는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레이션, 즉 편지를 읽는 남자의 목소리를 통한 이야기의 전달이 필요했다. 나레이션이 들어가지만 조금 다른 구조로 영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전작들에서 가상의 세팅된 무대가 있고 내러티브를 통한 이야기 전달이 있었다면 <더미>에서는 다르게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레이션이 들어가게 되었다.

김: 전작들에서는 노동에 대한 이야기들, 삶에서 발견한 사소한 것들로 시작해 영상으로 이야기했다면 <M의 장>(2014)은 완전 밖으로 나온 공공 미술 작품이다. 물론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비슷하겠으나 형식이 달라졌다. 그 전에는 영상으로 소통을 이야기했다면 <M의 장>은 공공미술인데다가, 직접적인 소통의 방식을 사용한다. <M의 장>의 내부는 거울로 뒤덮여 있는 것인가?

효: 안에는 카메라가 있지만 거울(스파이 미러)로 덮여 있어서 사람들은 잘 모른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별별 행동을 다 하더라.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구조물 밖에 멀리 떨어져 있는 세 대의 모니터를 통해 비춰진다.

김: 파주의 네 지역에서 촬영했는데,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효: 우리는 파주에서 오래 살았다. 학교나 공원은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랜드 마크라 선택하게 된 거고 임진각과 미군부대는 파주에만 있는 특징이라 선택했다.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 두 곳과 특정한 대상들만이 오가는 두 곳을 선택한 것이다.

김: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본인들이 만든 이야기가 담긴 영상을 상영하는 게 아니라 관객을 직접 만나고, 그들을 화면에 담고,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듣는 <M의 장>의 형식을 어떻게 선택하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M의 장>이 아니더라도 밖에서 영상을 상영해서 보여줄 수도 있지만 관객들이 뭘 느꼈는지를 바로 보여주고 받아들이는 과정들도 보여주는 걸 택했다.

효: 관객들의 의견이 듣고 싶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고 그 의견들을 생생하게 취하고 싶었다. 우리의 경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너무 목말라 있던 때였다. 영상도 중요하지만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우리가 느끼고 그분들이 느끼는 것들을 취합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었다.
<M의 장>은 육면체로 된 구조 안에 거울만 있다. 그러나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누군가는 많은 걸 봤다고 할 수 있다. 조명이 밑에서 나와서 낯선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그림자도 검정색인데 위로 치솟아서 그 효과가 중요했던 것 같다. 낯설고, 불편하게 보일 수도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부는 아주 조용했기 때문에 사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래서 ‘M’의 의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김: 그렇다면 그런 공간을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효: 또한 <M의 장>을 한 장소에서 3일 동안 진행하면서 그 공간에서 나온 것들로 오브제를 만들어 옆에 두었다. 이후 초등학교와 미군부대에서 작업할 때도 각 장소에서 얻은 피드백을 가지고 작업을 했고, 재료도 그 장소에서 직접 구해서 만들었다. 설치되고 있는 공간, 장소와의 맥락이 중요했다.김: 공공미술을 해보니까 어땠는지? 무진형제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가?

무: 정말 너무 힘들었다. 대신 알게 된 게 많다. 그 힘든 가운데 알게 된 것들이 묘한 매력이 있었다. 미군부대, 파주라는 장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그게 공공미술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여러 지역을 돌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작가도 무언가 얻어가는 게 있어야 하니까. 그런 점에서 공공미술이야말로 반드시 작가의 작업에 활력을 주고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효: 공공미술 활동이 영상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아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가능하면 많이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영상만 파고든다고 해서 원하는 작업이 나오진 않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실 우리는 굉장히 소극적이었는데 <M의 장>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별거 아닐 수 있지만 크게 와 닿았다. 그런 부분들이 우리 스스로 변화해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할 땐 너무 힘들었는데 하고 나서는 2-3년에 한 번씩은 기회가 된다면 하고 싶어졌다.

김: 사실 공공미술은 당연하게 관객에게 피드백을 받게 되고 소통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솔직하면서도 직접적인 반응은 굉장히 오랜만에 봤다. 인터뷰 당시 임흥순 선생님이 공공미술이 좀 더 나은 것 같다는 피드백을 하셨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효: 정확하게 말하면 공공미술을 자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피드백을 주셨다. 작업과 같이 해야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크게 동의했다. 영상 작업에만 파묻혀 있으면 계속해서 동일한 것들만 만들어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럴 때 공공미술 작업을 하며 우리의 경험치를 확장시키고,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게 된다. 때문에 공공미술이 우리의 작업이 아닌 것도 아니다. 카메라만 안 들었지, 실은 공공미술이야말로 우리가 각자 해왔던 작업을 더 집약적으로 해야만 하는 작업이다. 또한 우리가 공공미술을 통해 얻고자 한 것도 글과 이미지, 설치작업 등 우리가 해왔던 작업의 연장선상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 때문에 공공미술이야말로 영상과 함께 가야 하는 우리의 공개적인 작업이다.

김: <M의 장>에서 내가 주목했던 것 그리고 동시에 의아했던 것은 작가가 직접적인 소통의 방식을 원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간 본인들의 작품의 태도와 그래도 분명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참여한 사람들의 피드백이 너무 날 것이고, 직접적이었는데 그걸 무진형제가 원했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부분인 것 같다.

효: 개인적으로는 <적막의 시대>를 발표하고 나서 소통을 더 고려하게 되었다. 그 작품에 대한 반응이 너무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생각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영상 전시나 상영을 통한 반응은 다소 간접적이고 잘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공공미술을 통한 소통은 직접적이고 그래서 현장으로부터 받는 울림이 매우 크다. 구조물을 설치하고 관객들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긴장해야만 했고, 그들이 전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잘 귀 기울여야 했으니까. 또한 그들이 보여준 반응도 크게 와 닿았고, 그때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때문에 그때 받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다음 작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 공공미술 작업 이후 제일 크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효: 작업들이 더 구체화되었다. 노동에 대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다른 변화가 있다면 <M의 장>을 통해 설치, 해체를 반복하다 보니 예전보다 훨씬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

김: 요즘 무진형제가 가장 크게 가지는 관심사는 무엇인가.

무: 나 같은 경우 니스 테러 등 테러에 관심이 많다. 이슬람에 대한 편견이라던가 종교 문제 등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스리랑카 노동자 분들과 기독교 분들과의 다툼이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지금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고 있는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이런 주제를 가지고 먼저 작업하신 분들도 있지만, 우리는 그들의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서는 물론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고향의 이미지와 이야기들을 채집해 그런 것들을 한국에서 재현해 보는 작업도 재미있겠단 생각을 해보았다. 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사람들이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하는 상황들이다. 그런 감정들과 그런 상황에서 오가는 말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 최저임금 문제도 관심사다. 그리고 10월 26일부터 오뉴월 이주헌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요즘 큰 고민이 부모님과의 관계인데 한번 가상의 공간에서 인물들을 통해 그런 것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우리의 시각에서 풀어보는 고민을 하고 있다. 사실상 지금 내가 경험하고 살아가며 부딪치는 모든 문제가 나의 최대 관심사인 것 같다.

효: 최근 두 가지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 우선 몸에 관한 문제다. POOLAP 인터뷰 때 한 작가분이 자신의 신체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양효실 선생님이 그걸 좀 더 심도 있게 파고드는 게 어떠냐고 피드백을 주셨던 게 기억난다. 양효실 선생님이 “당신의 고통은 당신만이 표현할 수 있다”라고 하셨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드러내고 싶지 않고, 솔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그럴 필요가 없겠구나 싶었다. 몸에 대한 것은 물론 그로 인한 고통과 주변의 시선 등, 몸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해 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아픔이나 고통이란 것도 때로는 삶의 원동력이 되며, 병으로 인한 고통도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몸에 대한 탐구가 몸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어떤 것과 접속해서 작업으로 구체화할지 고민 중이다. 마지막 관심사는 신작 <비화>에 관해서다. 최근 내 주변 환경, 특히 공간과 그 안에 깃든 무수한 생명체의 삶에 관심이 많다.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이 개발 중인 신도시다 보니 너무 빨리, 쉽게 모든 게 파괴되고 있다. 산이 헐리면서 그곳에 살던 여러 동물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마을 공동체가 순식간에 허허벌판으로 변하는 등의 변화를 지켜보며 나 또한 무언가를 상실한 기분에 휩싸였다. 동시에 어릴 때부터 집안 어른들에게 들었던 집과 터전에 관한 이야기, 특히 집을 지켜준다는 업구렁이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비화>작업은 이런 배경에서 하게 되었다. 아마도 무진형제 작업을 하며 공간과 이야기, 그리고 우리와 함께 공존하는 무수한 생명체에 관한 작업이 여러 형식으로 이뤄질 것 같다. 이러한 작업은 개인적으로 조형작업을 해왔던 내게 좀 더 많은 지점과 접속해 작업을 확장시킬 수 있도록 할 것 같다.